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것 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 고린도후서 1:3~5 –
위로의 하나님
2주쯤 전인가의 주일 예배. 은혜롭고 감사한 예배였는데 그 예배 중에 새로운 감정을 느꼈습니다. 가슴뛰는 설레임이나 보통의 평온함과는 좀 다른. 하나님이 나를 위로하고 계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동시에 내게 그게 정말 필요했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얼마 후 묵상 중에 또 비슷한 말씀에 맞닥뜨렸습니다. 모든 위로의 하나님. 이 위로의 하나님이 우리를 위로하시고, 그 위로를 통해 다른 사람도 위로하게 해주신다고 합니다.
잊고 살기 쉬운데, 우리는 위로가 필요합니다. 크리스천으로서 세상, 교회, 그 외 처한 많은 곳에서 치열하게 날을 세우고 버티면서 살아가는 중 입니다. 마음을 지키며 살아가야 하는 시대입니다. 하나님의 위로가 필요합니다.
이런 우리에게 하나님이 위로의 하나님이 되어주십니다. 모든 환난과 어려움 중에서 위로자가 되어 주십니다. 모든 것을 아시고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는 성령님을 통해 바로 나의 마음을 아시고 위로해주십니다.
그냥 위로만 하지 않으시고 회복시켜 주십니다. 우리만 위로 받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환난 중에 있는 자들에게 위로자가 되게 해 주십니다. 하나님에게서 받는 위로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위로의 통로가 되게 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깊은 위로를 경험한 사람은 그 위로를 전하는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용서를 경험한 사람은 또 그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살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이유가 우선 내가 회복되고 그 회복을 주변에 전달하는 통로가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통해 내가 회복되고 다른 사람의 회복의 통로가 되는 것이 우리 삶의 목적 중 하나 아닐까요?
지금도 세상 속에서 크리스천으로 제대로 제자답게 살려면 고난이 있습니다. 물론 초대교회정도의 고난은 아니겠지요. 하지만 세상의 문화와 가치관은 근본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의 가치와 배치됩니다. 명시적으로, 그리고 교묘하게 세상의 가치에 휩쓸리게 만들고 그것을 거스르려는 순간 많은 고난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그리스도로 인한 고난은 반드시 위로가 수반됩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넘치신 것 같이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친다고 말씀합니다. 이 위로와 믿음 덕에 세상에서 그리스도 제자로 살아낼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이 위로의 하나님을 더욱 알기를 원합니다. 세밀하고 디테일하며 배려심 넘치는 하나님에 대한 앎이 더욱 깊어지기를 원합니다. 크고 놀라우신 하나님이지만 동시에 나를 가장 잘 아시고 가장 사랑하십니다. 큰 일 하시느라 바쁘신 분이 아니라 나에게 관심이 많으시고 세밀하게 잘 알고 계십니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을 알고 계시고 마음을 아시며 지극히 나를 잘 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지금도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길 원합니다. 세상적인 마음 다스리기나 힐링 말고 하나님과의 근본적인 친밀감에서 비롯된 위로를 누리고 싶습니다. 회복시키시는 능력과 질서 안에서 평안하게 회복되고 싶습니다.
내게 필요한 위로를 허락하시는 은혜에, 주님 곁으로 갈 때까지 지속할 수 있는 힘을 주심에, 다른 사람까지도 살릴 수 있는 특권을 허락하시는 우리 위로의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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